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男 | 23세 | 186cm | 81.3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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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이대로 절망하게 두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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效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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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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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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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정(雅正), 상냥, 바른, 세심한, 선행하는

날카롭고 무심하기만 했던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의 효진은 아정하며 상냥하였다. 무표정한 모습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선하고 올바르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하나,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과거에는 가식이 있었다면, 현재의 효진은 거짓 한 점 없는 진심만을 표현하였다. 상냥하게 웃었고, 힘들고 지치더라도 포기하지 않았다. 효진을 오랜만에 만난 이들은 ‘능글맞아 졌는데?’라는 말을 입에 담기도 하였다.

 

허나 그럼에도 여전히 효진은 효진이다. 이러한 모습은 사실 이전부터 줄곧 가지고 있었던 것들. 다만 그 가식이 무너지고 나온 진심이기에, 어색해 보일지언정 여전히 효진 그 자체이다. 이전에는 싫어하는 것은 질색하고 배척해 내기 바빴으나, 현재는 다소 여유가 생겨 무엇이건 너그럽게 넘어가는 편이다. 호전적이었던 성격도 가라앉아, 무턱대고 시비를 걸지는 않았으나 종종 친밀함의 표현으로 정강이를 걷어차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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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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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王 가문의 사람들은 주로 단단하고 튼튼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 도를 쓰는 것 또한 능숙했으나 기본적인 가문 구성원들은 진심을 다해 무예를 겨룰 때 ‘도’를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자신의 신체가 아닌 도구에 의지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상대에게도 ‘예’를 갖추지 못한 것이라 여기는 탓이다. 그럼에도 도를 쓰는 것에 능숙한 것은 초대 王 가문을 세운 ‘왕효진’이 ‘배움에는 끝이 없고, 넓고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라는 가훈을 세웠기 때문이다.

    王 씨 성은 몹시 흔하다. 그렇지만 일반 사람들은 王 가문의 사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새 깃털로 이루어진 귀걸이 때문인데, 홀로 걸어 다닐 나이가 되면 받는 것으로 항시 착용하고 다닌다. 새처럼 가볍고 민첩한 육체를 가지길 소망 하는 마음에서 시작 된 전통이기에, 이를 아는 타 가문의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손대지 않는다. 왕효진의 귀걸이는 '자새'(참새)의 깃털이다. 허나 효진은 ‘화락천’이라는 별호를 새로이 얻으며 이 귀걸이를 버렸다. 가문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로 마음 먹었기에.

    가문 대부분의 사람은 ‘예외’가 아니고서야 거의 ‘무당파’에 들어갔다. 가훈과도 제법 어울렸기도 하고, 전체의 흐름을 읽는 싸움의 방식이 王 가문의 사람들에게 딱 맞았기 때문이다. 현재 王 가문은 여전히 무예에 힘쓰며 ‘무당파’에 들어갈 인재를 기르고 있다. ‘예’를 중요 시 여기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 가문의 생각이기에 ‘거짓’이나 ‘비겁한’ 것을 극도로 적대한다. 

    허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간에서는 王 가문을 '예의를 잊은 가문, 곧 대가 끊어질 가문, 부질없는 것을 바라는 가문, 고지식하여 침몰하는 가문' 정도로 알려져 있다. 현재 가문의 구성원은 상당 수 연안27년 무렵 떠났다. 과거의 영광과 위엄은 사라졌고, 기둥만이 남았다. 그 기둥 마저도 왕효진이 의료인으로서 명성을 날렸기에 유지가 되었으니, 그야 말로 외줄타기와 같이 위태로웠다.

    ‘ 시작이 있다면 그 끝 또한 존재하지요. ’
     

  • 왕효진은 王 가문에서도 제법 예외적이다. 튼튼한 신체도, 단단한 주먹과 발차기도 없다. 대신 침술과 약초학에 능해 별호로 ‘생사여탈’이 붙었다. 무당파 내에서도 수련 중 다치는 이들의 치료를 도맡아 하고 있다. 허나 정백대전이 끝난 이후, 효진은 곧바로 사존께 청하여 출사를 하게 된다. 그 뒤 발이 닿는 대로 다니며 살리고자 하는 이들을 살리고, 자신이 원하는 이상향을 향해 걸어가니 이를 지켜보는 이들이 새로운 별호로 효진을 칭하였다. 그것이 ‘화락천’, 효진도 제법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 생일은 5월 30일. 허나 이를 아는 이는 몹시 적었다. 같은 문파의 이들도 몰랐으며, 오직 왕효진의 사존 만이 알고 있다. 속세를 멀리하는 무당파의 특성 때문에, 왕효진이 나서서 생일을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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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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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 사이 |

"말은 그렇게 하면서, 늘 진심이니까."

예의를 지키는 것이 곧 도리. 그렇게 믿고만 살아온 세월을 부정이라도 하듯, 정백대전이 끝난 이래 효진은 연도에게 '마지막' 경어를 뱉었다. 효진에게는 그것이 연도에 대한 진심이었다. 구태여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연도 사형과 자신은 나름 정이 있다고 판단하였다.(물론 효진의 일방적인 생각이지만.) 서신을 주고 받으며 쌓인 것인지, 아니면 비무대회 이후 줄곧 순차적으로 쌓인 것인지.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었으나, 효진은 나름 연도에 대해 '그래도 객잔에서 엎어지면 날 업어다 무당산에 던져는 줄 사람.'라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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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의 수화불…용? |

"잘못 먹었을리가. 그래서, 정말 내가 보고 싶지는 않았고?"

이전에는 서로가 끔찍이도 질색하여, 혀를 차는 관계였다. 허나 지금의 관계는 ...어딘지 묘하게 굴러간다. 건휘는 여전하였으나, 왕천이 자뭇 달라졌다. 이전에는 표정을 굳이고 쓴 소리를 내뱉었다면, 지금의 왕천은 묘하게 건휘에게 다정하게 굴었다. 누군가는 이를 보며 '왕천을 사칭하는 인간 아니야?!'라고 하기도 했다. 진실이 무엇이건, 종종 건휘에게 서신도 넣는 왕천이었다. 물론 마지막 답장이 '죽이러 갈때 까지 죽으면 죽여버리겠다~'같은 뉘앙스였으나, 정작 그 서신을 쓰던 왕천은 무표정이 아닌 웃고 있었다.(이를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이 무서운... 미소였다라고 진술한 것은 덮어두자.) 언제는 수화불용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수화불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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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냥친우 |

"탐유, 여전하신 것 같아 ...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

공식 친우이기에 종종 서신도 보냈으나,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 직접 찾아가기도 하였고 짧은 시간을 함께하기도 하였다. 장난끼가 다분한 탐유, 가벼운 언행을 극불호 하는 이전의 효진이었더라면 질색팔색을 했을 것이 분명하건만. 친우는 친우인지, 아니면 성격이라도 바뀐 것인지 효진은 덤덤이 거기에 맞장구를 쳐주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이전처럼 아주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5냥으로 시작한 관계였으나, 효진은 나름 '절대 나는 돈으로 친우를 산 것이 아니다. 절 ...대 ...'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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